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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인사 숭례문이 불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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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 건너 숲 작성일 08-02-11 17:47 조회 18,2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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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기분이 되게 꿀꿀하다. 어제 늦은 밤, 남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곧 끄겠지' 했었는데... 문루가 불타 없어진 채 흉한 몰골을 드러낸 모습을 화면으로 대할 때의 참담한 기분이란. 현재로선 방화의 혐의가 무척 짙지만 고의로 불지른 게 아니었기를 간절히 빈다. 그러나 방화가 아니였다 하더라도 이 경우도 넓게 보면 관리의 잘못에서 벗어나긴 힘들지 않을까. 무슨 소리인가? 소방서냐 경찰이냐, 문화재 관리국이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그건 한국사회 전체가 저지른 무작위의 잘못과도 같다.

 

다시 말하면 "국보 1호"를 지키지 못한 건 방화에 버금가는 총체적 해이에 해당한다. 일상의 대비와 사후 대처에서 또 하나의 '태안'사태가 어른거리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만약 울 나라 사람들의 문화감각에 점수를 매긴다면? 아무리 해도 100점 만점에 30점을 넘기 어렵다. 이런 돼먹지 않은 생각의 배경을 이룬 경험은 실로 헤일 수 없이 많다. 전국 각지의 문화유적지에서 골고루 겪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니까. 서울만 해도 옛 국립박물관(중앙청)이라든가, 경복궁, 창덕궁 등의 고궁에 가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또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경주에서, 문무대왕의 수중능을 바라보는 감은사터에서도 어렵지 않게 봐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구한 문화의 향기 대신 무엇을 더 값지다고 생각할까? 프로이트의 말을 빌린다면 '구강성'!

 

이런 감각은 600년 숭례문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도 진행중이다. 나라 보물(국보)만 소중할까, 그보다 더 풍성하고 다양한 풀뿌리 문화도 있다. 그런 '미시적 차원의 문화'를 오롯이 담지해야 할 지역사회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울 성공회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요?). 그러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낮거나 아예 문제의식조차 없는 지경이다. 기록하거나 남겨서 뭐하냐는 일종의 허무주의가 판을 친다. 이를 대체하는 추동력이 있다면 그건 대개 욕망의 팽창과 개발 쪽이다. 내친 김에 말한다면 "국보 1호"란 몰문화적인 표식부터 우리의 평균적 문화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닌지. 평소 내 마음 속에는 남대문보다는 팔만대장경이나 훈민정음이 우리나라의 대표상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곁을 지날 때마다 바라봤던 숭례문의 아아~그 아름답고 웅장한 자태. 뭉클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옛날 첫 직장이 그 부근이었다).

 

곁들여 두 가지 삽화가 생각난다. 병인양요 때이던가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약탈해 갔다던 문화재(서적). 떼제베 고속철도 낙찰 덕분이었던지 이걸 미테랑 정부가 반환을 약속했었다. 그런데 프랑스 박물관의 여직원이 한사코 반환을 거부했다고 하는 '동화 같은' 얘기. 티브이 화면에도 나왔었다. 하얀 장갑 낀 손으로 먼 이국 조선에서 온 책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보이던 '문화 나라'의 빠리지엔. 이럴 땐 성토해야 하나 감탄해야 하나. 울 나라에도 있다. 1966년 쯤으로 기억한다. 불국사의 석가탑(무영탑)을 보수공사할 때였다.

 

그때의 기술이란 게 요즘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우지끈찬란했다. 기단들을 해체하며 기중기로 들다 깻박을 쳐서 탑신이 서로 부딪치며 깨졌다. 그때 어느 시인(이름은 까먹었다)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시를 써댔다. 그는 공사 현장에 흩어진 자그만 돌조각까지 주워모아 손에 들었다.

 "미안하다. 석가탑아. 부끄럽다. 용서해다오".

이런 사람들이 관리들 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자꾸 많아지리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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