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인사 [스크랩] 2. 빛의 창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마리아 작성일 07-09-10 14:50 조회 20,908회 댓글 0건본문
2. 빛의 창조/겸향 이병한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3-5)
*************************************
빛이 있으라는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말이 현실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따르고 능력이 따릅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는 것은
그 말씀에는 권세가 따르고 능력이 따르기에
그 말씀을 따른 결과 역시 말씀이 의미하는 결과와
같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가면 다 늙고 낡아져서 힘을 못 쓰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던 이론도
세월이 가면 다 유행 따라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다 의복같이 낡아서 없어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고 다 이루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가는 것은
마치 지금까지 내가 의지 하던 모든 줄을 끊어 버리고
홀로 광야로 나가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기쁨이 옵니다.
첫째 날의 빛의 창조는 창조의 순서에 있어서
과학적으로도 적절 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결과로 나타난 현상을
규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무에서 유로 탄생된 사건을 설명 할 방도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측량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규명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다만 이 모든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쓰인 모든 기록들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사실만 받아들이지만
믿음의 사람은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불가사의한 문제도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첫째 날에 창조된 빛은 오늘날의 태양은 아니었습니다.
태양과 달과 별들은 넷째 날 창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첫째 날 창조된 빛이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빛임엔 틀림없습니다.
그 빛은 밤과 낮을 구별하는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첫째 날 창조된 빛은
넷째 날 태양이 위치한 곳보다는
지구와 더 가까이 있었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왜냐하면 둘째 날 궁창위에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는 창조가 진행된 것으로 보아
지구를 뒤덮은 물을 공중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빛이 수증기를 증발 하도록 하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빛은 물을 공중으로 끌어 올릴 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나게 될 모든 동 식물에게
생명과 먹이와 자유를 보장해주게 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자신은 세상의 빛이다. 라고
선언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날 창조한 빛이 시각적인 빛이라면
예수님이 자신을 가르쳐 빛이라고 말씀하신 빛은
영적인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날 창조된 빛은 영적인 빛을 계시해 주고
영적인 빛을 설명 할 수 있는 교재 재료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시각적인 빛이 자연에게 생명과 자유와 물을 주었듯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와 은혜의 비를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대 자연은 하나의 하나님의 작품이며
그 작품 속엔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화가의 그림 속에 그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 하신 다음에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구 한쪽에 빛이 있는 동안은
반대편은 어둠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선과 악이 공존 하게 함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거부 하고
선의 편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선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강제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뜻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둠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우리 앞에 두시고
선에 속하기를 원하시되
최대한 우리의 자유의지를 보장 하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의 뜻에 강제적으로
순종 할 수밖에 없는 천사들과 달리
선택의 기회를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선과 악이 공존 하고
빛과 어둠이 교차 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저런 악인들을 어찌 그대로 두시냐고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대한 선택의 기회를 주시고
스스로의 결단으로 돌아오기를 탕자의 아버지처럼
기다려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빛을 지으신 다음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빛이 하나님의 성품을 잘 반영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손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대 자연은 모두가
하나 같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 하실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 하고 있는데
유독 인간만은 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면서도
멸망함에 유예기간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향한 오래 참음임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내를 악용하여 더욱더 겁 없이
사악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된 모든 만물은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인간만은 불순종 하면서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가 곧 그 사람들일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