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인사 Re: 토고의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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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 건너 숲 작성일 06-06-14 12:22 조회 18,969회 댓글 0건본문
어젯 밤 우리가 이겼고 그대들은 졌습니다. 2:1로서 우리의 1점차 승리였죠.
허나 축구경기를 조금이라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지요.
그건 실력의 차이에서라기보다 결국 승운이 우리 쪽에 더 따랐다고 할 수밖에요. 공정하게 말하건대 토고 대표팀이 더 나은 점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일찍이 그대들의 감독이 한국의 약점을 등골 서늘할 정도로 파헤쳤듯이.
첫골을 넣은 이는 쿠바자였지요. 우리 팀을 패배시킬 뻔한 골이었지요. 그의 거침없었던 질주를 어디에 비길까요. 마치 대륙을 내닫는 검은 야생마 같았습니다. 고무공 같은 탄력을 지닌 몸매는 관능미까지 전달했고 날카로운 순발력은 순간마다 번뜩였습니다.
그의 눈은 당연히 승리의 갈망으로 이글거렸지요. 이렇게 말하면 과장일까요. 또한 그런 만큼 선량했고 슬퍼 보였습니다. 만일 그후 우리가 잇따라 두 골을 뽑아내지 못했더라면 아마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아프리카를 대변하는 상징성을 획득했을 것만 같습니다. 이천수, 안정환이 "돌아온 한국의 영웅"으로 불릴 수 있다면 쿠바자의 어깨 위에는 아프리카의 존엄이 내려앉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어떤 '분노'의 무게까지 더해서 말입니다.
듣던 대로 아데르바요르도 훌륭한 선수이더군요. 황새같은 몸놀림도 그렇지만 왠지 경기를 즐기는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해주더군요. 이런 느낌은 예의 우리 선수들에게서 진하게 묻어나오는 무서운 결기 같은 무거움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된 장면 하나. 첫경기와 승리의 중압감에 서로 시달렸기 때문인가요. 어제 경기가 끝나고 왜 유니폼을 서로 교환하는 모습이 안 보였는지 못내 아쉽습니다.
토고는 중요한 일차전을 우리에게 져서 16강행 차표를 놓쳤습니다. 아직 프랑스와 스위스 전이 남아 있긴 하지만 객관적 전력에 비춰 사실상 토고가 올라가기는 어렵게 됐지요. 허나 나는 토고는 이미 승리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월드컵이란 세계무대에 토고란 나라 이름을 사상 처음으로 올린 때부터 그렇지 아니하겠습니까.
토고는 무척 가난한 나라입니다. 오래 전에 식민지의 멍애는 벗어버렸다고 하나 아직도 사회불안정과 가난의 굴레는 여전합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토고 축구는 한 떨기 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형국과도 같습니다. 국민소득은 300달러를 넘지 못하고 국가대표 선수라고 해봐야 한달에 겨우 10만원의 돈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전 까닭 모르게 미안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우리 젊은 대표선수들이 누리는 돈의 절반만 아프리카에 쏟아붓는다면 더도 말고 월드컵 챔피온은?
그래서입니다. 남은 경기에서도 열심히 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들의 몸짓에서 울고 웃을 400만의 토고 국민들과 수억의 아프리카 민중들을 생각합니다. 그대들은 그들의 환호와 희망과 절망과 언제나 함께 해야 합니다. 그대들에겐 최소한 그러한 의무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스포츠에 미칠까요. 아마 이기고 지는 벌거숭이의 진실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경우 아름다운 패배란 말은 위선이 되기 십상입니다. 허나 아름다운 퇴장은 있을 법합니다. 그리고 그건 가혹하지만은 않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인간을 움직이는 또 다른 동력원이니까요.
월드컵 경기장은 수많은 상징과 젊음 그리고 군중의 광기가 함께 폭발하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환호성 뒤에는 살벌하고도 무미건조한 소외를 은폐하고 있는 곳입니다.
토고와 한국.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그와 같은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 뮌헨의 어느 길거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만나는 날을 상상해봅니다. 맥주를 마시면서 젊음을 맘껏 발산하면서 서로 당당한 지구촌의 시민으로서 우정을 다져가는 그런 즐거운 풍경을 그려봅니다.
끝으로 토고 선수들의 행운을 빕니다.
허나 축구경기를 조금이라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지요.
그건 실력의 차이에서라기보다 결국 승운이 우리 쪽에 더 따랐다고 할 수밖에요. 공정하게 말하건대 토고 대표팀이 더 나은 점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일찍이 그대들의 감독이 한국의 약점을 등골 서늘할 정도로 파헤쳤듯이.
첫골을 넣은 이는 쿠바자였지요. 우리 팀을 패배시킬 뻔한 골이었지요. 그의 거침없었던 질주를 어디에 비길까요. 마치 대륙을 내닫는 검은 야생마 같았습니다. 고무공 같은 탄력을 지닌 몸매는 관능미까지 전달했고 날카로운 순발력은 순간마다 번뜩였습니다.
그의 눈은 당연히 승리의 갈망으로 이글거렸지요. 이렇게 말하면 과장일까요. 또한 그런 만큼 선량했고 슬퍼 보였습니다. 만일 그후 우리가 잇따라 두 골을 뽑아내지 못했더라면 아마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아프리카를 대변하는 상징성을 획득했을 것만 같습니다. 이천수, 안정환이 "돌아온 한국의 영웅"으로 불릴 수 있다면 쿠바자의 어깨 위에는 아프리카의 존엄이 내려앉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어떤 '분노'의 무게까지 더해서 말입니다.
듣던 대로 아데르바요르도 훌륭한 선수이더군요. 황새같은 몸놀림도 그렇지만 왠지 경기를 즐기는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해주더군요. 이런 느낌은 예의 우리 선수들에게서 진하게 묻어나오는 무서운 결기 같은 무거움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된 장면 하나. 첫경기와 승리의 중압감에 서로 시달렸기 때문인가요. 어제 경기가 끝나고 왜 유니폼을 서로 교환하는 모습이 안 보였는지 못내 아쉽습니다.
토고는 중요한 일차전을 우리에게 져서 16강행 차표를 놓쳤습니다. 아직 프랑스와 스위스 전이 남아 있긴 하지만 객관적 전력에 비춰 사실상 토고가 올라가기는 어렵게 됐지요. 허나 나는 토고는 이미 승리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월드컵이란 세계무대에 토고란 나라 이름을 사상 처음으로 올린 때부터 그렇지 아니하겠습니까.
토고는 무척 가난한 나라입니다. 오래 전에 식민지의 멍애는 벗어버렸다고 하나 아직도 사회불안정과 가난의 굴레는 여전합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토고 축구는 한 떨기 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형국과도 같습니다. 국민소득은 300달러를 넘지 못하고 국가대표 선수라고 해봐야 한달에 겨우 10만원의 돈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전 까닭 모르게 미안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우리 젊은 대표선수들이 누리는 돈의 절반만 아프리카에 쏟아붓는다면 더도 말고 월드컵 챔피온은?
그래서입니다. 남은 경기에서도 열심히 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들의 몸짓에서 울고 웃을 400만의 토고 국민들과 수억의 아프리카 민중들을 생각합니다. 그대들은 그들의 환호와 희망과 절망과 언제나 함께 해야 합니다. 그대들에겐 최소한 그러한 의무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스포츠에 미칠까요. 아마 이기고 지는 벌거숭이의 진실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경우 아름다운 패배란 말은 위선이 되기 십상입니다. 허나 아름다운 퇴장은 있을 법합니다. 그리고 그건 가혹하지만은 않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인간을 움직이는 또 다른 동력원이니까요.
월드컵 경기장은 수많은 상징과 젊음 그리고 군중의 광기가 함께 폭발하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환호성 뒤에는 살벌하고도 무미건조한 소외를 은폐하고 있는 곳입니다.
토고와 한국.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그와 같은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 뮌헨의 어느 길거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만나는 날을 상상해봅니다. 맥주를 마시면서 젊음을 맘껏 발산하면서 서로 당당한 지구촌의 시민으로서 우정을 다져가는 그런 즐거운 풍경을 그려봅니다.
끝으로 토고 선수들의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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