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 - 13면] 2000만분의 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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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4-22 13:56 조회 8,232회 댓글 0건본문
2000만분의 일(4)
최 금 희 | 셋넷학교
그러던 2002년 친하게 지내던 남한에 있는 한분의 소개로 남한 남학생을 알게 되었고 우린 몰라보게 가까워졌다. 그렇게 알고 지낸지 며칠 뒤 남학생은 나와 사귀자고 하였고 나도 그러자고 하였다. 우린 함께 영화도 보고 밥도 함께 먹으면서 서로에게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친구는 한번 도 나에게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는 자리가 있으면 은근히 내 눈치를 보고 어떻게든 나를 돌려보내려고 하였다. 그렇게 지내길 한 달, 별안간 그 친구는 연락이 없었고 나는 여러 번 연락을 하였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그 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문자를 받았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헤어지자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며칠 뒤 그 친구를 처음 소개시켜준 분을 만나게 되었고 내 얼굴 표정을 보더니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나는 순간 울컥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속에 묻어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보니 내심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먼저 그 친구를 좋아해서 쫒아 다녔고 내가 먼저 고백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배신감 보다 내가 지닌 북한이라는 단어에 북한 사람이기에 사랑 앞에서도 떳떳할 수 없다는 그 친구의 생각에 화가 났고 그러다 순간 내가 서있는 한국 땅이 너무 싫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아빠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아빠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도 않으시고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울던 나는 눈을 들어 아빠를 바라보며 “아빠 북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왜 이렇게 힘듭니까?” 하며 물었다.
아빠는 나를 바라보더니 “너는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데……. 한국 사람들보다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시 물었다.
“너는 북한 사람 2000만 명 중 한명으로 여기 한국에 오지 않았냐? 그러니 넌 특별한 사람이지……. 그러니 지금 힘든 것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잊지 말라 너는 2000만분의 1일이라는 것을…….”
아빠의 2000만분의 일을 들은 후부터 나는 이 세상에 서 있는 내 위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만뒀던 공부를 시작하였다. 당시 나는 북한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녀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었다. 19살 나는 중학생이 된 마음으로 영등포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고 2002년 4월에 있을 고검(중학교 졸업)을 준비하였다. 드디어 원서 접수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선생님이 다른 학생들은 모두 등록됐는데 나만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내가 아직 초등학교 졸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중학교 2학년을 마쳤는데 왜 인정이 안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통일부와 교육부에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 하였지만 여전히 그들의 대답은 초등학교가 6년제라서 북한에서 초등학교 4년제를 졸업해도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도 2년이 부족하니깐 졸업 인정이 안 되는 것인데 북한에서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은 어떻게 대학교를 갈 수 있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할 수없이 나는 중학교 검정고시를 못 보게 되었고 다음해 5월에 돌아오는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기다려야 했다.(다음호에 계속)
본 원고는 2006년 제1차 새터민 정착사례 수기 공모 최우수상 수상작으로서, 최금희씨의 허락 하에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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