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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0 우물가 보고서] 우물가의 뜻을 내 안에 담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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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3-10 15:02 조회 6,75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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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의 뜻을 내 안에 담으면서

남우희(엘리사벳, 서울주교좌교회)

우리 아버지는 강화도 교동섬에서 나서 교동소학교를 다니다가 열 살쯤 물 건너 황해도 땅으로 이사갔습니다. 교동에서는 강화 본도보다 황해도가 더 가깝습니다. 아버지는 연백에서 성장하였고 황해도 청단 출신인 우리 어머니와 혼인하였습니다. 혼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터졌고, 강화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왔고, 좀 지나서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업고 왔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못 오셨는데요, 저는 거기 집을 지키고자 하셔서인 줄 알았더랬습니다. 가산을 다 처분해서 옮겨갔으므로 그곳 집을 지키고자 하셨나 보다, 그리고 전쟁이 오래 가지 않으려니 하셨던 것 아닐까 저 혼자 짐작했습니다. (제가 소설나부랭이를 너무 많이 읽었나 봅니다.) 그게 아니더라고요. 우리 어머니가 타고 온 그 배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배가 못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깜깜한 새벽에 총소리가 어지러운 속에서 우리 할아버지는 며느리와 손자를 보내고, 당신은 다음 배편을 기약했던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교동도와 석모도에 사촌, 육촌, 당숙 등 친척이 많았으므로, 타향살이를 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한테야말로 타향살이였습니다. 그런데 고향을 바라보며 한탄하고 황해도 무슨 면민회 활동에 열심을 내는 것은 언제나 아버지였어요. 아버지는 종종 울분에 차곤 했습니다. 이산가족 방북단 관련 소식만 들리면 한껏 기대하시다가는 깊이 실망하고 심히 분노하고 끝내 좌절하였습니다. 어느 때엔가는 부모님(제 조부모님) 나이를 가늠해 보면서 이제 더 살아계시길 바라기 어렵겠다며, 어떻게 사시다 돌아가셨을지 모르겠다고, 과연 장례나 변변히 치러졌겠냐며 한탄을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생사도 모르는 불효 자 식이 아버지의 폐부를 찔렀다는 것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만, 아버지의 고향 타령은 좀 지나친 데가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당신 어머니(제 외할머니) 이야기를 그닥 안 하셨는데, 우리 아버지는 장모님 이야기도 자주 하셨습니다. 제가 더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우리 어머니는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궁금했습니다. 여성들은 진정 하느님의 백성이라, 현재를 충실히 살면 그만이었던 걸까요?

수년 전에 교동을 비롯 강화도와 인천에 사는 실향민들이, 판문점을 경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려서 건너다니던 그 물길로 방북하게 해달라고 당국에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어려서 연백으로 이사갈 때 건너간 그 물길이요, 아버지가 귀환한 그 길, 어머니와 큰오빠가 자기가 난 곳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그 길입니다.

저는 삶의 보금자리를 위협당한 적이 없습니다만,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는 성서 말씀이 꽤 큰 위로가 되곤 합니다. 부모님의 슬픔을 헤아려서만이 아니라, 제가 나그네라는 마음이 종종 들곤 했으니까요. 몸 둘 바를 모르겠는 떠돌이라는 자의식이 꽤 심각했습니다.

G.F.S.에서 하는 우물가 프로젝트는 성서 말씀을 참되게 실천하려는 뜻으로 압니다. 귀한 노력이지요. 올해 1월, 2월에 몇 차례 카페 그레이스에서 일하면서, 정말 이 카페가 이름도 뜻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 고장 여인과 나눈 말씀을 기억합니다. 시온도 예루살렘도 아니라 저마다 자기가 있는 곳에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날이 올 것이라는 가르침을 기억합니다.

우리 카페에서 커피를 사 잡숫는 분들만이 아니라, 우리 카페 곁을 스쳐 지나는 분들, 카페를 그저 한 번 보기만 한 분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이루어 가는 분들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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